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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혁준이 쓴 '어머니 나오미와 나의 17년' ◀



'아빠없는 하늘아래 등대되신 엄마 이 막내가 꼭 집 한채 사드릴게요' 아이돌이 유명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꾸준히 화제에 올랐던 일 중 하나가 멤버 최혁준의 어머니가 왕년의 명배우 나오미씨라는 사실이었다. 아들에게 혹시 엉뚱한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뒷바라지만 해오던 나오미씨. 최혁준이 털어놓는 '나의 어머니 나오미와 지난 17년간의 생활'. (정리/이수은 기자, 사진/정기락 기자)

　이민 1.5세대들이 대부분 그런 오해를 받듯 나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1.5세대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자랐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다. 하지만 나는 특별한 어머니와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로 인해 내 또래 아이들이 겪지 못했을 기억들이 머리속에 가득하다.
　46세의 나이에도 젊음과 미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계신 어머니는 연기자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1973년,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연기 활동을 중단했다. 재미 교포 사업가였던 아버지 최명광씨는 미국에서 대형 창고업을 하는 상당한 재력가였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도 최호화 주택가에 속하는 비벌리힐스의 주택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아버지 돌아가신 그날도 목욕 함께 했는데...]
　그러던 중 89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내 나이 겨우 일곱살. 사고를 당하시던 바로 그날 오전에도 나와 아버지는 단둘이 목욕을 하기도 했었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려서 뭐가 뭔지 잘 몰랐다. 다만, 어머니와 두 형이 우는 모습이 너무나 슬펐다.
　주위에서 '애들이 너무 불쌍하다. 저 어린 것들을 어떡하느냐'며 두런두런 나누는 얘기들이 마치 나쁜 꿈속의 일인듯 여겨졌다. 그것은 분명 일곱살의 사내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사업을 혼자 운영해 나갔다. 어머니는 늘 화장을 곱게 하고, 예쁜 옷을 차려입고,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분이셨는데…. 하지만 아무리 바깥 일이 바쁘시더라도 오후 4시 전에는 꼭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손수 지은 따뜻한 저녁을 만들어주셨다.
　그때 우리 형제들끼리 한 다짐이 있다.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 얘기는 절대 꺼내지 않기, 공부 열심히 하고 어머니 속 안썩여드리기, 이 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꼭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릴 것.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사업은 계속 기울어갔고, 92년에는 LA폭동까지 일어났다. 어머니는 이런 환경에서 더이상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하셨다. 20년간 삶의 터전이었던 LA를 버리고, 아무도 반겨줄 이 없는 고국으로 귀국하기로 했다.

[단호한 귀국 결정 … '드래곤 볼'로 한글 공부]
　나는 태어난 고향이자 많은 추억들이 묻혀 있는 미국에 많은 친구들을 남겨두고,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땅으로 가야한다는 일이 너무나 싫었다. 그건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결심은 단호했다. 어머니는 나와 유진형이 한국말을 못하는 것을 걱정하시며 당시 대유행이었던 만화책 '드래곤 볼'이 한글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손수 사오기도 하셨다. 사실 나의 한국어 실력은 그때 '드래곤 볼'을 열심히 탐독한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생각했던대로 순조롭지 않았다.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하루는 유진형이 바깥에서 맞고 들어와 어머니가 한숨도 못주무시고 마음 아파하던 일이 생각난다. 친구들이 '미국에서 오면 다냐? 한국말도 못하고 마음에 안든다'며 때렸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부쩍 난다고 하신다. '아버지없이 자란 자식이라 버릇이 없다'는 말을 안듣게 하기 위해 어머니는 우리를 무척 엄하게 기르셨다. 큰형과 작은형은 종아리를 맞은 적도 많았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때로는 다정한 친구이면서도, 그 어떤 아버지보다 무서운 분이셨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께 혼날 일이 생기면 눈물부터 나온다.

[가수 데뷔 노래방에 가서 확인끝에 허락]
　이런 내가 어머니께 가장 걱정을 끼쳐드렸던 일은 갑자기 가수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다. 어머니는 공부를 해야할 나이에 무슨 가수를 하겠다고 나서느냐며 적극 반대하셨다. 사실, 어머니는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내 노래실력을 보이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노래방에 갔다. 어머니는 그때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놀라셨단다. 어머니는 겉으로는 화려하게만 보이는 연예인의 고충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에 당신의 막내 아들이 연예인이 되는 것을 선뜻 허락하실 수 없었단다.
　지금은 연예계 대선배이자 나의 훌륭한 선생님이다. '연예인이 되려면 우선 여자친구를 정리해야 한다, 춤은 어떻게 춰야 하며, 웃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고, 방송국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는 무조건 공손하게 인사해야 한다' 등등 조언을 하신다.
　바쁜 스케줄로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오면 내가 잠이 들 때까지 안마도 해주신다. 어머니는 요즘 아이돌이 하도 유명해지니까 어머니 친구나 친척들이 너무 많이 사인을 부탁해 귀찮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흐뭇하시단다.
　지금 우리는 우리 가족 소유로 된 집 한채도 없다. 지금 사는 아파트도 전세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아버지가 안계시지만 그분의 빈자리를 넘치도록 메워주는 아름다운 어머니가 있고, 사랑하는 형들이 있으므로.
　엄마는 평소에 내가 돈을 너무 아낀다고 '짱꼴라'라고 부르면서 놀리신다. 하지만 내가 돈을 모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다음에 어머니 혼자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 좋은 집을 사드리기 위해서다. 우리 삼형제를 혼자서 키우느라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꼭 이 막내 아들이 행복하게 해드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벌써 부자가 된 느낌이다.

▶ 최혁준 어머니 나오미씨 인터뷰 ◀

"막내는 눈물 많아 회초리 한번 못들었어요"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 후 어떻게 지냈나.]
　남편은 나보다 열살이나 연상이었다. 스물세살의 어린 나이에 남편만 믿고 결혼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행복하기만 했던 시절,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동안은 실의에 빠져 지냈다. 아픈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동양화를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이 남겨놓고 간 사업체와 아들 셋을 두고 실의에만 빠져 지낼 수만은 없었다. 남편이 경영했던 LA의 대형U로크 셀프 스토어리지(창고업)를 경영하면서 아들 셋을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억척스럽게 살았다.

[영구 귀국한 가장 큰 동기는 무엇이었나.]
　92년, 남편에 대한 슬픔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있었는데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났다. 다행히 우리 사업체는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더이상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장남인 로이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에 진학한 것을 계기로 아이들을 설득해 영구 귀국하게 됐다.

[혁준의 성장과정은 어떠했나.]
　막내인 혁준은 어렸을 때 얼굴이 못생겨서 가족들이 모두 '못난이'라고 불렀다. 형들하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가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자랐고, 돌아가신 혁준의 아버지도 형들에게는 무척 엄하면서도 막내 아들에게는 유난히 관대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혁준의 나이가 겨우 일곱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런 큰일을 당해 혹시 아이가 비뚤어지지 않을까 혁준에게 가장 많이 신경썼다. 다행히 공부도 꾸준히 잘하고, 별 말썽없이 곧게 자라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혁준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일단 옷이나 신발의 치수를 너무 크게 입는 점과 앞가리마를 하는 것이 마음에 안들어 매번 얘기하다가 이제는 포기한 상태다. 마음씨가 착하고 여려서 상처를 잘 받고, 바깥에서는 우는 법이 없는데 집에서는 잘 운다. 혼내려고 하면 눈물부터 뚝뚝 떨어뜨려서 마음이 약해진다. 덕분에 혁준은 형들과 달리 한번도 맞아본 적이 없다. 너무 빼빼 마른 것도 걱정이다. 편식을 많이 하는데 그것도 좀 고쳤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요즘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것은 연예인으로서, 공인으로서의 행동에 대해서다. 힘들고 귀찮은 일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 감출 줄도 알고, 자신을 꾸밀 줄도 알아야 하는데 혁준은 그런 부분을 상당히 힘들어한다. 왜 잘 모르는 사람에게 90도로 인사를 해야 하고, 한시간 방송을 위해서 서너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가끔 불평을 한다.
　또, 예전에는 공부를 상당히 잘했는데 성적이 약간 떨어졌다. 엄마로서의 욕심은 노래도, 공부도 모두 잘했으면 좋겠다.

[배우로서 계속 활동할 계획은 없나.]
　미국에서 귀국한 직후 SBS '가을 여자'와 KBS1 '당신이 그리워질 때', SBS '까치네' 등에 출연했었다. 요즘에도 PD분들이 나오미씨같은 중년 연기자가 필요하다며 자주 섭외를 해오시는데 지금으로서는 연예활동을 하기 힘들다. 둘째 유진까지 가수로 데뷔해 아들들 뒷바라지만으로도 바쁘다. 오래 기억되는 배우보다는 훌륭한 엄마가 되고 싶다.

[배우 나오미는 누구인가?]
　1971년 데뷔, 도미하기 전인 73년까지 단 2년간 무려 30여편의 청춘영화에 출연해다. 서구적인 미모와 청순함으로 지금으로 치면 김희선에 비유할 수 있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홍익대 미대 공예과에 재학중이던 70년 미스 영 인터내셔널 대회에서 준미스로 당선돼 스무살의 나이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71년 신성일이 처음 메가폰을 잡았던 '연애교실'의 여주인공으로 데뷔, 본격적인 연기활동에 들어갔다. 그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랑하는 아들 딸아', '총각선생' 등에 출연했다.
　73년 인기 절정의 상태에서 사업가 최명광씨와 결혼하면서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남편이 89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92년 고국으로 돌아와 20년만에 TV에 컴백했다. 이후 SBS '가을 여자', KBS '당신이 그리워질 때', SBS '까치네'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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